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항암은 장난이 아니야.

 

처음 항암치료를 기다렸을 때는 지나치게 긴장한 것이 탈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온갖 항암 부작용의 정보를 접하니, 오만 가지 부작용이 다 내게도 일어날 것처럼 걱정을 했더랬다. 덕분에 항암주사 맞기 직전에 열이 살짝 올라서 폐렴 검사 등 각종 검사를 하고 난리를 쳐서(물론 감염증은 없는 걸로 판명) 계획보다 8시간 가량 늦어져 밤늦게 주사를 맞았다.

1차 치료후 퇴원하고 나서는 손톱 옆에 생긴 작은 상처 하나를 소독하러 가정의학과에 갈 정도로 철저하게 개인 위생 관리를 했다. 나중에는 이 역시 너무 지나친 걱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냥 대충대충 살았다.

3주 사이클로 예정된 항암치료 일정을 그대로 지키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호중구 수치가 떨어져도 촉진제 주사만 이틀 연속으로 맞으면 바로 회복이 되어, 그 다음 주 치료를 하는 데 호중구 수치가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5차 항암 때까지는 그랬다.

5차 항암 이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체감했다. 그래도 난 내 기분대로 몸을 움직이다가 쉽게 체력을 방전시키고 감정적으로도 절제하지 못 했다. 결국 호중구 60개(역대 최저치)를 찍은 날 혀에 큰 궤양이 생겼고, 그 덕분에 난생 처음 무균실이라는 곳도 구경해 보았다.

퇴원하고 나서도 다음 치료 일정 수행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예정보다 겨우 이틀 미뤄졌을 뿐이고, 월요일 퇴원할 때 호중구 수치가 매우 충분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 걸. 호중구 500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는 숫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적잖이 당황했다. 이번이 마지막 치료였기 때문에. 얼른 피날레를 맞이하고 싶은 조바심도 있었고.

뭐, 당황스러운 감정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뿐히 날려 보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게지. 마지막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집에 와서 한숨 자고 나니 기운도 났다. 어차피 겨우 6일 늦춰지는 것이다. 그냥 다음 주 월요일까지 마음 편히 쉬는 수밖에.

머리를 비우고, 항암제 앞에 겸손해지는 나날을 보내야지.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진정한 아버지빽.

 

우리 아버지는 공무원 세계에서 살아 있는 신화 같은 존재다. 가장 말단 직원에서 시작하여 직업 공무원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하셨다. 남들이 보면 그간의 세월은 그저 승승장구한 것으로만 보여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주요 보직을 맡으셨고, 승진 시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으셨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은 잘 안다. 그간의 세월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으며, 오히려 큰 절망에 빠져 있던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딱 내 나이 때, 그러니까 내가 내 아들만 했을 때 아버지는 테니스를 치시다가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 거의 1년간 입원을 하셨다.

한창 일할 나이에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정말 일밖에 모르고 사셨던 분이기 때문에 상실감과 조바심도 크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일을 새로운 충전의 계기로 삼으셨다. 결국 그것이 나중에 더 큰 복으로 돌아오게 됐다.

물론 나는 이 이야기를 커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로보카 폴리밖에 모르는 내 아들은 훗날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내 아들은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전해 듣고 기억하게 될까.

나 역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그런 훌륭한 삶을 살고, 내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정말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시련을 겪었고 또 그것을 이겨내셨다. 그때는 내가 좀 머리가 자란 이후의 일이라 아주 소상히 알고 있다.

나 역시 이번 시련이 한 번이 아닐 것임을 아버지의 경우를 봐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시련이 닥쳐온다고 해도 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고 그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얻은 가장 큰 교훈이며, 아버지가 내게 주신 진정한 ‘아버지빽’이다.

2011년 9월 15일 목요일

관음증.

 

나는 완전 관음증 환자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덕목이 있다:

“절대 걸리지 말 것.”

이게 자신 없으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일종의 윤리의식인데, 당하는 사람 기분은 얼마나 엿 같겠나. 우리 마누라도 비슷한 얘기를 해줬다:

“바람 필 때 피더라도, 절대 내 앞에서 걸리지 마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그냥 하지 말아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혼자 즐겨라. 그것은 개인의 온전한 자유니까. 또한, 이는 개인의 사고 중 가장 은밀한 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 인권적 측면에서도 옳다.

당신의 행동은 참 잘 못 되었다. 무엇보다 말기 암환자를 갖고 장난 쳤다는 점에서, 천벌을 피하기는 해도 속으로 쪼께 찜찜할 것이다. 나는 요즘 대충 곧 죽는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별로 무서울 게 없다. 어차피 금방 저 세상 가는데 뭘. 요딴 생각을 가지고 사니 아주 머리속이 심플해지고 기분도 상콤하다.

그러니까.

똑바로 좀 살아봐.

(난 얼마나 살고 싶은데, 힝. 너는 그 아까운 시간에 그거 하고 앉았냐. 한심한 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

 

3차 항암이 만만치 않았다.

현재 척수액에는 암세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병기가 병기인지라 예방 차원에서 척수항암을 하고 있다. 뇌와 척추뼈 안쪽으로는 항암제가 잘 침투하지 않기 때문에 척추뼈에 구멍을 뚫고 직접 항암제를 주사하는 것이다. 다행히 나의 척추뼈가 주사바늘에 특화된 구조를 갖고 있어서 바늘을 찌르는 동안 통증은 없다.

문제는 맞고 나서인데, 요번에 아주 제대로 걸렸다. 몸을 일으켜 세우기만 해도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무조건 누워 있었다. 먹는 시간 빼고는 무조건 누웠다. 그러기를 1주일. 이제 좀 걷기는 한다. 머리는 안 아프지만, 통증이 골반 쪽으로 내려가서 완전히 꼿꼿이 서지는 못 한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내가 병원에서 처음 교회를 가고 3부 예배때 만난 구절이다. 이야기의 전후 맥락이 있겠으나, 다 짤라먹고(^^;) 두 구절만 인용하려고 한다. 그때 이 구절을 만나지 못 했다면, 나는 크리스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종일 울었던 날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예레미야애가 제3장 26, 27절)

2011년 9월 5일 월요일

암 팔기.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수많은 종류의 상품 중에서 M―C―M'의 마법을 부리는(?) 상품인 임금노동자의 ‘노동력’에 대해 서술한다. 이렇게 단순히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한 마디로 자기 몸뚱아리를 파는 거다.

내가 암환자로서 스스로 위축되는 때는 내 몸뚱아리를 팔 수 없다는 자각을 할 때이다. 특히 새벽마다 예전과는 달리 풀이 죽어 있는 내 동생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흔히 하는 말로 “가진 건 불알 두 쪽밖에 없었던 시절…”로 시작되는 수많은 자수성가 스토리는 내게 오히려 자괴감을 줄 뿐이다:

“뭐여, 이건 어따 팔 수도 없잖어.”

하지만 변강쇠는 팔 수 없지만 나만 팔 수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암이다. 물론 돈 받고 파는 것은 아니고, 결국 따지고 보면 내게 시간적/경제적 가끔 금전적(?) 이득을 안겨다 준다는 점에서 ‘판다’고 표현하려고 한다. 그 방법의 기본은 상대방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스스로 처량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는 퇴원하고 처음 암을 팔아본 순간부터 그 재미를 느꼈고 이제는 ‘암 걸린 것도 억울한데 암이라도 열심히 팔아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 여기서는 그 첫경험과 최근 경험만 소개하고자 한다.

입원 당시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붓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안경테가 좀 휘었다. 퇴원하고 다음날 바로 예전에 안경을 맞췄던 안경점을 찾았다. 사장님과 직원 모두 친절한 곳이었고, 종종 들러서 소소한 얘기를 나눈 터라 서로 얼굴은 기억하고 있는 사이였다.

서로 기억하고 있는 모습에서 변한 것은, 나의 하늘색 마스크뿐이었다. 퇴원하고 감염예방에 특별히 신경을 쏟아야 하는 나는, 이왕 찾은 김에 안경 닦는 수건을 두 장 달라고 부탁하였다. 평소 친절했던 직원은 다소 쌀쌀 맞게,

“그건 공장에서 들어오는 물건이 많지 않아 한 장씩밖에 못 드려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때 나는 머리를 한 움큼 쑥 뽑으며,

“저 암환잔데요.”

“헉!”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손가락 셋을 펴 보이며,

“세 장 주세요.”

“아, 네.”

이게 나의 첫경험이다. 머리 뽑는 스킬은 그 다음날 삭발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암을 팔아보니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고 그 방법도 무궁무진했다. ^^;

가장 최근 경험은 지난 토요일의 경험이었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웃기는 상황이고 참 내가 많이 뻔뻔해졌구나,라고 느꼈던 일이다. 내 차는 4년전 중고로 구매한 것인데, 잔고장이 잦은 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집 근처에 해당 회사의 서비스센터가 있어서 자주 방문한다. 그곳 직원은 모두 매우 친절한데, 특히 한 직원은 성실한 인상에 일도 열심히 하고 기술적으로도 많이 알고, 고객 입장에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내 차의 잦은 고장에는 짜증이 났지만, 친절한 그들의 서비스에는 늘 감동했다.

그날 발견한 고장은 2년전 증상과 동일한 고장이었다. 도난경보음이 오작동하는 것인데, 운행중 충격으로 인해 본네트의 간격이 벌어지면 그런 고장이 발생할 수 있고 그 간격만 정상적으로 조정하면 오작동은 사라진다,고 그 친절직원이 2년전에 설명해주었다. 나는 고장을 발견한 순간 그 원인을 진단하고 수리방법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불행의 씨앗은 간격을 조정할 줄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쉽게 수리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고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오후 3시쯤 방문했는데, 토요일이라 좁은 서비스 센터 안은 물론이고 주변 인도까지 서비스 대기 차량으로 꽉 찼고 전직원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접수담당 직원―40대 중반의 여성인데, 이 분도 한 친절 하신다―에게 차분히 내 차의 고장에서부터 그 원인과 해법까지(!) 설명해드렸다.

그 사이에도 구형 마티즈 한 대가 서비스센터로 들어왔고, 나는 일단 기다려 보라는 접수담당 직원의 말을 듣고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그 문제의(?) 친절직원이 열심히 도면을 보며 전화로 부품 주문을 하고 있었다. 원래 안면을 튼 사이였지만 그가 너무 바빠서 눈인사도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접수담당직원은 밖에서 차량을 대강 눈으로 살펴보고 들어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손님, 대기 차량이 너무 밀려서 지금은 주행과 관련된 고장이 아니면 수리가 좀 어려우십니다. 원래는 다섯시에 마감인데, 직원들이 모두 일해도 여섯시 넘게 끝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다음주에 오시면 안 될까요?”

“안 되는데요,”

역시 암을 팔았다.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제가 다음 주초에 3차 항암주사를 맞습니다. 주사 맞고 일주일은 헤롱헤롱 하는데 그 기간에는 주로 마누라가 차를 쓰거든요. 근데, 마누라는 차를 잘 몰라서 당황할 것 같습니다.”

외래진료가 화요일로 예정되었다는 말은 일부러 생략했다. 월요일에 오라고 할까봐. ^^ 헤어스타일은 빠박이에다가 하늘색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으니 겉보기에 거짓말로 의심할 만한 정황은 없었다. 날짜를 하루 땡긴 것 빼고는 거짓이 아니기도 했고.

약간 당황한 접수 직원은 잠깐 밖으로 다시 나가 여기저기 작업지시를 하는 척하더니, 나를 다시 대기상태로 전환시키고 내 뒤에 온 마티즈 커플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쪽은 정말 심각한 고장이었다. 브레이크 고장. 생명과 관련된 고장이므로 이쪽에 우선순위가 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 커플은 내 얘기에 자극을 받았던 건지, 상황극도 연출하고 있었다:

“자기야, 나는 일단 여기서 일은 더 보고 있을 건데 일단 차 맡기고 혼자 집으로 가. 택시비는 얼마나 나올까? 한 3만원은 넘게 나올 것 같은데.”

여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어쩌지? 자기 오늘 일도 늦게까지 할 거잖아. 그냥 내가 조금 기다려서 차량 수리하고 집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아까 브레이크 안 들어도 어떻게든 좀 가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안해서 안 되겠더라구.”

나도 안다. 그리고, 위기의식을 느꼈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장이다. 지갑 속을 보니 병원 진료카드가 있었다. 접수담당 직원이 내게로 와서 다시 사정 설명을 시도하려는 찰나, 나는 그의 말의 앞을 자르며 암행어사 마패를 들었다:

“여기 보세요. 나 월요일에 항암주사 맞거든요. 그게 일종의 독극물인데, 그거 맞고 정신 못차리는 상황에서 마누라가 차 모는 걱정까지 하면 치료가 제대로 되겠어요?”

여기까지는 목소리 볼륨은 높아졌지만 차분한 어조는 유지했다. 다시 직원이 변명을 하려고 하길래 마무리로,

“아니, 이걸 못 고치긴 왜 못 고쳐? 이거 2년전에도 쉽게 고쳤는데. 아픈 사람 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 지금 집에 갈 테니까 이거 그냥 고쳐놔!”

악보로 치면 crescendo. 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스스로 연주에 감탄하고 연주장을 빠져 나왔다. 소리를 지르는 동안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표정관리가 됐는데, 나와서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겼지만 혹시 들킬까봐 꾹 참았다. 연주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한 20m쯤 걸어서 마스크를 벗고 크게 웃었다. 암환자는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웃음치료하는 것처럼, 껄껄껄 웃었다. 큰 소리로!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저장된 번호는 아니었지만, 나는 예감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너무 까불었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성격이 그지 같아서 암 걸렸어요.”

“아닙니다. 수리 다 됐습니다. 찾아 가세요.”

그 친절직원이었다. 이번에는 모자를 쓰고 방문했다. 여전히 고장 차량 수리에 전념하고 있는 친절직원에게 다가가 모자를 벗고 정중히 사과했다. 그 다음에는 사무실에 들어가 접수담당 직원에게 마찬가지로 사과했다.

“얼마죠?”

“그냥 가세요.”

2년전에 돈을 냈는지 안 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주 간단한 고장 수리는 가끔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는지 기억이 불분명하다. 어쩌면 해피콜―AS 만족도 전화조사, 바쁠 때 받으면 전혀 행복하지 않은 자기모순의 전화―이 안 가도록 아예 접수 자체를 안 했을 수도 있다―확인하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이번에도 판매 성공은 했다. 암 판매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나는 즐겁지만 어느 정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위 두 사례는 이 점에 관해서 양 극단에 있는 사례이다. 이미 암에 걸려버린 사람은, 두 사례를 참고하여 적절한 수준에서 암을 파시면 좋겠다. 이런 말씀 안 드려도 각자 일상에서 열심히 팔고 계시겠지만. : )

2011년 9월 3일 토요일

진짜 프로 낚시꾼이 요기 잉네?

 

이 블로그의 이름은 나의 소망을 반영한 것이다. 꼭 나쁜 의미가 아니라,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므로 그나마 내가 가진 재주 중에서 하나에 대해 ‘프로’가 되고 싶은 욕심을 반영한 이름이다.

그런데, 요즘 존경스러운 프로 낚시꾼의 부각에 새삼 놀라고 있다. 이 역시 비꼬는 의미가 아니라, 진심 그렇다. 또, 부럽다. 그 얘기를 잠깐 해보려고 한다.

그 존경스러운 분은 바로 이 분!

20110902163245299 머니투데이 / 이기범 기자 / 2011. 09. 02

 

모두가 잘 아는 이 분이시다.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이미 대충 짐작하셨을 거다. 정말정말 우발적으로 치뤄지는 이번 선거에서 기존 정치인들은 어떻게 기회를 잡나 서로 눈치보고 있는 사이, 짠 하고 선빵을 날리시고 –다른 기성 정치인들이 선빵을 안 날린 것은 아니나, 그닥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는 사이– 연일 뉴스의 중심에 서 계시고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유지하고 계신 분이다.

이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생각해볼 만한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안철수 개인과 관한 것이다. 그 동안 정치를 하네 마네 이런 얘기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할 때마다 참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허허실실 잘 넘기면서, 정부 정책에 관해 할 말은 다 해오셨다. 그러면서 또 한 자리도 하시고. ^^ 개인이 정치적인 야망을 갖는 것 자체는 도덕적인 선악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사실 진짜 도덕적으로 나쁜 놈들은 깜냥도 안 되는 것들이 나서는 것이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고(내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결과만 놓고 유추했을 때), 그저 시류에 휩쓸려 혹은 돈 자랑하려고 등장했다 사라진 정치신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점에서 볼 때 마운드에 오를까 말까, 감독의 지시도 없이 불펜에서 팔 몇 번 흔들었을 뿐인데 상대방을 벌벌 떨게 하는 선동열 투수만큼 안철수도 매력이 철철 넘쳐 흐른다. 즉, 사람들이 안철수를 “진짜 좋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선거에서 바람이란 게 참 무서운 건데, 10월 26일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시점에서 초반 거대한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그가 다른 후보군보다 세 수 내지 다섯 수는 앞서 가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 점은 결국 안철수가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래서 본 선거에서 기존 정치인들이 아무리 깎아내리고 흠집을 내려고 해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이라는 점을 예견하게 한다.

둘째, 기존 정치판의 플레이어들에 관한 것이다. 한나라당, 민주당 모두. 사실 이번 사건은 기존 정당이 자초한 결과다. 그걸 알고 있나 잘 모르겠다. 그동안 서로 물밑에서 영입작전을 펴왔으면서도 “나 무소속 할래,” 한 마디에 각자 이해득실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옹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참 안쓰럽다.

사실 한나라당의 말이 정치공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선거에서 가장 첫번째 게임의 규칙은, 후보자 구도이다. 양자 구도이냐, 3자 구도, 혹은 그 이상의 구도이냐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후보가 잘 나고 못 나고는 그 다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후보자의 수가 아니라, 정당의 수와 선거제도라는 변수를 적용해서 나온 이론이라 본 건 과는 약간 핀트가 다를 수 있지만, ‘듀베르제의 법칙’이라는 이론도 사실상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듀베르제의 법칙이 사회과학에서 ‘법칙’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론이듯이, 선거판에서 제1의 게임의 규칙–후보자 구도가 선거결과를 결정한다–은 절대적이다.

쉽게 설명하면, 한나라당의 계산–안철수가 우리 표 말고 민주당 표 깎아먹는다–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적어도 기존의 정치공학적 계산에서는. 그런데, 여기서 그들의 한계가 있으며, 그 점 때문에 그들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데도 반성도 못 하고 참 한심하다. 누구 말마따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아마 다음주초에 홍준표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마구 질책을 할 것이다:

“누가 자꾸 안철수를 시장 후보로 영입하자고 해서 방방 띄워놨소? 그렇게 정체성 없이 표만 보고 휩쓸려 다니다가 우리가 이렇게 된 것 아니오?”

만약 월요일에 이런 기사가 뜬다면, 나를 무당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시 홍준표는 남 핑계만 대는, 무책임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들은 정말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놓치고 있다.

그 점에서는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마치 영원히 야권의 ‘갑’ 노릇을 하겠다는 심뽀를 대놓고 드러내는 반응인데, 역시 매우 안타깝다. 그리고, 당내에서 선빵을 날린 천정배 의원이 불쌍하다. 이계안 이런 분은 말할 것도 없고. 한명숙은 여전히 뻔뻔하게 주판알 튕기고 있을지도 모르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 하기 약간 미안하지만, 박원순 변호사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의 반응은 그래도 포털에 안철수 타이틀 옆에 혹은 아래 작은 글씨로 실어준다는 점에서, 기존 후보군보다 상대적으로 낫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역시 매우 슬픈 일이다. 공부만 잘 하는 샌님의 한계일 수도 있고, 최근 착한 일을 많이 했지만 덩달아 욕도 많이 먹은 탓에 한계가 아주아주 분명해 보인다. “쟤는 왜 갑툭튀 해가지고. ㅜㅠ” 이런 마음이겠지. 그냥 좋은 이미지 유지해줬으면 좋겠다.

이제 결론으로, 그럼 넌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니는 뭐가 잘 나서 이렇게 떠드느냐고 외치는 여러분께 한 말씀:

“난 말기 암환자요. 내일 모레 저 세상 갈 수도 있소. 10월 26일날 투표 못할 수도 있지롱. 헤헤.”

2011년 9월 2일 금요일

암은 선물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 오전, 병원에서 채혈 순서를 기다리는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보낸 일명 ‘암 편지’를 읽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야, 나 좀 부럽다. 나도 그 암 걸리고 싶어. 정말 적당한 거 잘 걸렸는걸?”

끄덕끄덕.

“어떻게 나도 좀 걸릴 수 없나? 그거 전염되는 거 아니지? 나도 좀 나눠 줘.”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글쎄, 좀 힘들 것 같은데. 일단 내 종양조직을 채취해서 너에게 이식하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첫째, 보험이 될까 모르겠고, 둘째, 내 암세포가 거의 사라졌거든. 원하는 조직 샘플을 얻기 힘들 거야.”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실화다. 아마 이 이야기만 처음 본 사람이라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이건 ‘암 편지’를 읽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그 편지를 아무에게나 공개할 마음이 없다. 만약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적어도 내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다면),  내게 문자 메시지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길 바란다. ‘암 편지’를 바로 쏴드리겠다. 또한, 보안 유지를 부탁드린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이 블로그의 글을 꾸준히 읽다 보면, 내가 나누고 싶은 행복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일단 이 블로그의 시작은 돈 주고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행복’을 나누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