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5일 일요일

몸으로 쓰는 서평, "모두를 위한 정치"

2025년 4월 4일 금요일 대통령 탄핵이 선고되고 바로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에 교대역 14번 출구 앞에서 YOON AGAIN 일파가 처음 모였다. 탄핵 찬성 집회에 두어 번 나간 경험은 있지만, 정치권 소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시기라 서부지법, 한남동의 겨울 상황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다지 정성 들여 관찰하지 않고 비난하기를 먼저 하였다. 한 마디로 그들을 이해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4월 5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동네를 거닐다 교대역 14번 출구 앞 도로에 모인 인파를 보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젊은 세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듣는 음악에(가사 내용은 매우 고개를 젓게 만들었지만)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동안 보수 집회에 대한 나의 편견은 이러했다: 나만사람(나이 많은 사람, 즉 '노인'의 경남 사투리)들의 잔치, 오후 4시 땡치면 해산하는 집회. 과거에도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지만 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분들은 집회에서 퇴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4월 5일 내가 처음 내 두 눈으로 확인한 집단에 대하여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내가 먼저 밀려날 것이기 때문에 공포감이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집회 참여자들이 굉장히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YOON AGAIN!", "STOP THE STEAL!" 팻말을 손에 들고 14번 출구에서 나왔다. '나만사람'들도 보였지만 소수였다. 그리고 나의 동년배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이날 본 젊은 세대가 이렇게 조직화되고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면? 아찔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집회는 저녁까지 이어졌고 비를 맞으며 그들은 강남역까지 행진했다. 그들에게 전날은 끔찍했지만 이날만은 해방 공간을 만끽하며 기운을 모았다. 나는 무서웠다.


다음주도 비슷했다. 4월 12일 토요일에도 비가 내렸고 그들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날 난 그들을 제대로 쳐다 보지도 못 했다. 나라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부터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기사를 보기도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찾아보고(책을 읽었다는 얘기는 아님), 공개 심포지엄을 신청했다. 이 모든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보는 쌓였으나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대선 이후의 정국은 뻔히 예측되었다. 간단히 말해 정치의 '실종'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두 개의 진영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어느 하나의 진영이 승리한 이후 다른 한 진영이 불복하는 것 말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 문제가 하루이틀 된 것은 아니지만, 역사상 가장 극명하게 갈리고 더욱 골이 깊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대선 결과가 나오고 거의 2주가 된 지금 나의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그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사실 이런 걱정을 내가 하고 있을 이유가 별로 없는데, 그냥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나서 잠이 오지 않았다.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자 집회의 동력이 상실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젊은 세대의 비중이 줄었고, 내가 편견으로 가지고 있던 과거 광화문 보수 단체의 집회와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안심할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명맥은 이어졌고 그들은 꾸준했다. 반면 현재 여권 세력의 집회는 그 세력이 약해 보였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일은 아니다. 어느 쪽도 진영간의 대화를 거부하고 세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필 세 대결의 장이 우리 동네라는 점이 짜증날 뿐이었다. 그래도 참을 만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한 번 정도는. 의식적으로라도 그 정도 참을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게 맞는 방법인가? 나처럼 가방끈 길게 정치학을 '찍먹'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한나 아렌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짐작 정도는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워낙 복잡하고 꼬여 있어서, 그리고 나도 문제가 뭔지 정확히 진단을 못 해서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답답했다. 5월의 어느 휴일, 교보문고 강남점에 아무런 목적 없이 방문했을 때, 마침 페이스북에서 이 책의 출판사 관계자인 선배가 올린 글을 보고 "모두를 위한 정치"(네드 오거먼 지음, 김창한 옮김, 마농지, 2025)를 접했다. 그 글을 보자마자 이 책을 충동구매했다.



트럼프 보유국인 미국에서 저자는 한나 아렌트에서 답을 찾았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양극화의 심화, 가짜 뉴스의 생산 등의 문제와 같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책 전체의 내용이 아니라, "5장 왜 수사학이 필요한가"만 다루고 이후에 내가 이를 현실과 연결 지은 사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앞에 가방끈이 길다고 짧게 언급했지만, 그건 학위가 없는 컴플렉스가 있어 언급만 했을 뿐이고 실상은 등록금 낸 이력이 많을 뿐이다. 그래서 '전문 지식'이라고 자랑할 것도 아니고, 아렌트가 보기에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덕목은 그것이 아니다. 동등하게 문제를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동등하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설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에 의한 지배보다는 수사학적으로 지배하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수사학은 겸손한 행위다. 왜 저들은 이렇게 멍청한지 짜증내기보다는 그들을 이해시키지 못한 나의 문제로 돌려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동등하게 말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일종의 기술이 필요하면서도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를 보면 아렌트의 말이 한가하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짜증나도 참고, 더욱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과 대화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상과 너무 멀다. 게다가 활발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담보할 것처럼 보였던 기술은 정치적 양극화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 책으로 캐스 선스타인이 쓴 2007년 저서 "republic.com 2.0"이 있다. 2008년쯤 지도교수님이 추천한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편집된 종이 신문과 비교할 때 Web 2.0 기술로 대변되는 개인 맞춤형 정보 제공 시스템은 결국 끼리끼리(the like-minded)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며 천국에 있는 한나 아렌트가 개탄할 일이다.


더 나아가 이 책이 나온 2007년에는 유튜브가 이제 막 대중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대중이 유튜브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의 위험성을 체험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최근에 유행하는 스레드는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몰아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republic.com 2.0"은 학술 도서라기보다는 거의 예언집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기술의 발전이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했다.


다시 우리 동네 얘기로 돌아가보자. 대선의 결과가 나온 이후 첫번째로 윤석열의 공판이 열렸던 날 나는 약속 때문에 회사가 아닌 집 근처에 있었다. 그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어디서 이런 공포스러운 소리가 나는 것인지. 그날은 토요일이 아닌 월요일이고, 이렇게 큰 소리의 출처를 짐작하지 못 했다. 골목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음향은 4월 5일 내가 느꼈던 공포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다음날 새벽 잠은 안 오고 동네를 배회하다가 그 소리의 원천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농성장을 차린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사정을 알아보니 24시간 철야 집회이며 기한을 두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무척 화가 났다. 일주일에 한 번도 모자라서 매일 그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니. 흥분된 마음에 쏘아붙이기도 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하여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방식대로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것은 분명히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겸손함과 거리가 먼 방식이었다. 뭐 나도 내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그들이 먼저 공격한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판단하기에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과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괴물'이 아니고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첫번째이다. 약 일주일간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관찰한 결과 그들이 우려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다만 아직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좀 답답한 일이다).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낸 '정치 공동체'(서초구 법원로 10, 정곡빌딩 남관 앞 집회신고 장소)에는 목가적인 평화로움이 관찰되기도 한다.


물론 늘 조용한 것은 아니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의 시행령에서 허용하는 데시벨의 범위 안의 있더라도 음악 장르의 특성상 귀에 쏙쏙 박히면서 사람 미치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 게다가 가사도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래도 다름을 인정하려고 한다.


이 모든 판을 만든 기획자는 정치적 결사가 일어나고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고, 서초구 법원로 10, 정곡빌딩 남관 앞에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차린 것으로 판단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25년전 쯤에 경험한 현장활동과 유사성이 있다. 낮 동안 공동의 작업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그 외 시간에는 반복되는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할 때 뭔가 음악이 몸에 흡수된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일주일간 나를 세뇌시킨, 짧은 가사에 반복되는 리듬을 가진 EDM은 계속 귓속을 맴도는 것이 '수능 금지곡'으로 지정될 만하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대화한다. 소소한 주제부터 향후 정국까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더욱 많은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한다. 작은 채널이라도 스스로 운영해보려고 하고 서로 유튜브하는 것을 권하기도 한다. 역시 그들에게 일종의 '해방 공간'이 주어진 셈인데 이러한 공간을 계속적으로 제공하는 것(한 달 단위로 집회 신고 기간 만큼 연장. 그들이 대통령에 대한 고등법원 재판이 다시 열리는 날까지 집회를 하겠다고 천명했으므로 최소 5년)이 집시법의 입법 취지와 맞는 것인지는 다투어볼 만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조건은 그들의 주장을 제외하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주장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들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그들이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이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 아렌트가 말한 '설득'의 부재이다. 다른 진영에 소속되는 사람이라고 의심되는 사람이 대화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설득'의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게다가 기술은 그 경향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스레드의 해시태그 방식은 그들을 자기 안으로 더욱 가둬두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것을 '소통'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앞서 얘기했듯이 겉보기에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해방 공간'은 기술적, 문화적 제약 때문에 '설득'의 공간으로 발전하지 못 했다. 여기에 근원적 문제가 있다. 어쨌든 나는 계속 문을 두드리려고 한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으므로 미래를 속단하기 어렵다. 다음 번에는 대화의 '기술'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2023년 3월 12일 일요일

진짜 청년 정치.

요즘 일부러 정치 관련 콘텐츠를 멀리 하고 있다. 안 그래도 주변에 기 빨리는 일이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소중한 나의 에너지를 소진하여 정치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 흔히 하는 말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또 너무 과잉이면서 진영 논리에 따라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라 그 질도 떨어진다. 정치적 효용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몇 년간 이른 바 '청년 정치'라는 이름으로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그들 하나하나 됨됨이를 평가할 실력은 안 되지만, 이제는 대체로 신선도도 떨어지고 차별화된 발언을 하거나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건 나만의 평가가 아닐 것이라고 보는데, 한 마디로 청년 정치인이 빠르게 기성 정치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도 대체로 40대를 향해 가고 있으며,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도 같이 늙어가는 걸 보면, 원래 이들이 20대부터 어떤 뚜렷한 정치적 식견을 쌓아왔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들이 그토록 공격하던 기성 정치인을 닮아가고 있다. 손호철 선생님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거울 이미지'(선생님이 이 단어를 청년-기성 정치인의 관계에서 쓰지는 않으셨지만)인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단지 그 청년 정치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특히 청년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것은 이후 정치권에 진입할 세대에게도 또한 한국 사회를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현재 비난 받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 변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대안으로는 현재 활동하는 '청년' 정치인들 중에서 미디어의 주목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진짜' 청년 정치인을 발굴하고 그들을 응원하여 궁극적으로는 보다 큰 정치판(?)에서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최근 우연한 자리에서 서울시 노원구의회 노연수 의원의 발언을 듣게 되었다. 몇 분 되지 않는 발언이었지만, 명확한 톤과 분명한 주장이 '물건'이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원래 사람의 매력을 파악하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으며, 유권자는 정치인의 공약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한 표를 행사한다기보다는 정치인의 매력에 이끌려 한 표를 행사하는 경향이 강하다(전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나의 억지 주장임을 인정함).


그녀가 다음 선거에서는 구청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이 시점에도 전국의 기초의회에 또 다른 '노연수'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청년 정치인의 등장을 응원해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유튜브, 팟캐스트 등에 넘쳐나는 정치 공해를 막고 진정으로 한국 정치를 한 발짝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2021년 8월 27일 금요일

인생 작전대로 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대학의 명강의를 대중에게 전하는 일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동영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인문학을 '소비'하는 트렌드도 한 몫을 했다고 본다. 뭐 이유나 목적이 어찌 됐든 좋은 강의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난 예전부터 '명강의'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 어떤 절대자로부터 대단한 진리를 일방적으로 제공받고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원래 "삐딱이").

대안으로는 修業이란 단어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쓰는 한자인 授業이 아닌, 修業이라 쓰면 뭔가 일방향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 수양을 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일방향 대형 강의가 대부분이라는 현실에 뜨악하고(1학년 수업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비싼 등록금 내고 그런 강의를 듣고 싶지 않아서 2학년때부터는 일부러 20명 내외의 소규모 修業만을 찾아 다녔다. 이 글에서는 기억을 더듬어 학부시절 修業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선정 기준은 딱히 없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정한 거다. 그만큼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다.

1. 철학 전공 - 언어철학 (구자윤 선생님)

철학과 수업은 대부분 소규모 수업이지만, 그렇다고 항상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의 스타일에 따라, 또 해당 클래스를 구성하는 학생의 성향에 따라 수업의 분위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구자윤 선생님은 편안하게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도 정확한 개념을 전달하는 데도 뛰어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학기의 커리큘럼은 결국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언어철학이란 일상의 언어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철학에서의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에 확장해서 해석하는 일을 경계해야 하지만,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이론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렸다. 각자 인생의 궤적(가정 환경, 교육, 자기 성찰 등)이 서로 다르기에 각자가 구사하는 언어의 '맥락'은 어차피 서로 다르다. 따라서 타인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나의 언어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기대는 애초에 접어야 한다. 다만, 인간은 그 '맥락'에 주목함으로써 그에 가깝게 다가갈 수만 있을 뿐이다. 이 같은 '개똥철학'을 주입하면 타인의 말에 상처 받거나 나 혼자 열낼 일이 많이 없어진다. 그런 면에서 아주 실용적인 교훈을 준 셈이다.

2. 사학 전공 - 서양사 특강 (백인호 선생님)

내 기억엔 서양사 특강 뒤에 무슨 번호가 붙었던 것 같다. 번호를 붙이는 데 무슨 규칙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해당 수업은 한 학기 동안 프랑스 혁명을 다루었다. 흔히 프랑스 혁명을 공부한다고 하면, '테니스 코트의 선서'니 '삼부회'니 뭐 이런 것들을 줄줄이 외우고, 'ㄴ-ㄹ-ㄱ-ㄷ' 혹은 'ㄷ-ㄹ-ㄴ-ㄱ'인지를 고르는 것으로 '혁명-반혁명'의 과정을 깡그리 뭉개버리는 입시교육의 폐해를 떠올리기 쉽다. 백 선생님은 프랑스 혁명 전공자로서 방대한 지식을 갖고 계시지만 결코 일방적으로 전달하지는 않으셨다. 학생들이 대한민국 입시교육을 통과한 정도의 수준은 된다고 가정하고, 매번 영문 아티클을 읽고 학생들이 그 안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 학기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망딸리떼'였다. 영어로 치면, mentality 정도에 해당한다. 입시교육에서는 부르주아지나 왕족 혹은 귀족 출신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면, 이 수업에서는 당시 프랑스 민중(이 단어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이 공유하고 있던 '혁명의 기운'을 강조했다. 중간고사를 건너뛰고 유일한 평가였던 기말 과제는 프랑스 혁명의 어떤 시기를 선택하여 기층 민중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 소설을 하나 쓰는 것이었다. 난 그닥 열심히 쓰지는 않았고 기한을 넘겨 억지로 제출했다(당연히 성적도 별로). 그럼에도 당시 내게 한 학기 수업 자체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프랑스 혁명뿐만 아니라, 현대사를 해석하는 관점을 기르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3. 정치학 전공 - 현대정치사상 (이동수 선생님)

우리 학교 정치사상 수업 이름은 항상 맨 뒤에 '史'자가 붙는데, 이 수업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아닌가? ㅎ 현대정치사상사, 라고 하니 좀 어색한 것 같아서 ^^;). 이 수업은 한 학기 내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다루었다. 이 수업을 듣기 전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내게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에 "신좌파의 상상력"이라는 책이 대단히 유행했는데, 아마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 컸다고 생각한다. 68혁명 때의 흑백사진을 오렌지색 톤으로 감싼 표지는 당시로서는 그 자체로 매우 '혁명적'이었다. 제목과 표지 때문에 잘 팔린 책이지 내용 때문에 유행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야지, 나만 이해하지 못한 걸로 생각하면 너무 억울함 ㅠ.ㅜ). 책의 두께에 주눅이 들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제대로 모르니 내용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다만 회색과 오렌지색이 조합된 표지가 패션 아이템으로 적절했을 뿐이었다.

이 수업의 첫날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명강의"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이미지가 20년이 다 된 시점에도 아직 선명하다. 이 선생님은 칠판 가운데에 가로선을 하나 죽 그어놓고 맨 왼쪽에 선 위로는 '자연', 그 아래로는 '인간'이라고 쓴 다음, 맨 아래 가로축에는 각각 순서대로 '선사', '고대', '중세', '근대', '탈근대', 라고 적은 다음 한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썰을 확 푸셨다. 그리고 난 그 '강의' 하나로 그 간의 컴플렉스를 해결해버렸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렇게 쉽게 설명하고, 결국 깡통 같은 내가 이해해버리다니! 일방적 '강의'는 첫날만 있었다. 그 다음에는 되도록 책을 읽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리오타르 같은 것도 어색한 번역으로 나온 책이었지만 더듬더듬 이해하면서 참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첫날의 그 "명강의"가 없었다면 그 기쁨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4. 중핵 필수 - 철학적 인간학 (스팔라틴 신부님)

졸업을 하려면 필수로 '그리스도 인간학' 또는 '철학적 인간학'을 들어야 했는데, 중핵 필수가 다 그렇듯이 내가 딱 싫어하는 대형강의 스타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1학년때 수강하지 않고 나중에 영어수업으로 개설될 때(그래서 10명 이하였던 걸로 기억, 폐강 위기였으나 어찌어찌 살아남) 듣게 되었다. 주교재로 여러 철학자를 다루는 영어 텍스트를 읽어야 했고 수업과 발표는 영어로 진행되었으나, 과제는 한글 책을 읽고 한글로 내도 무방했다(그래서 신청했다). 그 때 과제로 읽었던 책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같은 책이다. 이런 책을 억지로라도 감수성이 조금 살아 있을 때 읽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두 책이 한국에서 유명한 책이 아니었는데, 신부님 덕분에 '죽음'에 대해 미리 공부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이후 암을 겪어내면서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는 기회를 주었다(그렇다고 다시 읽지는 않았다).

5. 경제학 전공 - 미시경제학 (송의영 선생님)

마지막으로 쓸 수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강의'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경제학 전공자는 (나같은 PEP 연계전공 나부랭이까지 포함하여)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고, 인기 있는 교수님의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과의 모든 분반이 동일하게 Varian의 Intermediate Microeconomics를 보고, 토론의 여지가 없이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과 습득만을 목표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송의영 선생님의 수업을 "명강의"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지 않고, "修業"으로 분류하고 싶다. 수강생이 100명 가까이 되었지만 말이다.

미시경제학 수업에서는 때때로 칠판 절반 정도를 쓸 정도로 공식 유도를 하여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기억엔(선택적 기억일 수밖에 없지만), 송 선생님이 한 번에 깔끔하게 공식 유도를 끝까지 하신 적이 드물다. 유도하는 공식 중간의 어느 한 줄에서 작은 실수를 하여 결국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봤자 어려운 공식 유도도 아니고 기껏해야 편미분 정도하는 건데 실수가 나올 건덕지는 별로 없었다.

(여담: 미시경제학에서 편미분 한 번 써먹으려고 경제학 전공자는 필수로 교양 과목인 "대학수학"을 들어야 했다. 내가 졸업할 즈음에는 고등학교 문과 교육과정에서 미적분이 빠진다고 미적분을 모르는 학생들이 경제학과에 입학하면 세상 무너질 것처럼 김경환 교수님께서 한숨을 쉬셨다. 하지만 그 뒤로 10여년 동안 미적분도 모르는 신입생이 들어왔지만 별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같이 문송한 학생들에게 미분은 그저 x의 최고차항부터 줄 세우고 x의 지수에 해당하는 숫자를 x 앞에 계수로 빼고 차수를 하나씩 낮추는 단순작업일 뿐이지, 원리고 나발이고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편미분도 x나 y 중에서 한 놈만 패는 것이다.)

그렇게 실수를 할 때마다 교수님은 칠판에서 한 발 물러서면서 물끄러미 칠판에 적힌 수식들을 바라 보셨다. 그리고 이내 실수를 발견하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 마디 하셨다:

"인생 작전대로 되지 않아요."

이후로 이 말은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대 학사에 하버드 박사이니 그보다 더 엘리트일 수는 없는 교수님께서 학부 수준의 공식 유도를 틀릴 리가 없다. 그렇다고 강의 준비를 게을리하는 교수님도 아니시다. 모든 것이 다 의도된 '작전'이며 '연기'가 아니었을까? 학생들에게 스티글리츠의 탈세모형 따위를 전달하는 것보다 딱딱한 경제학 강의에서도 인생의 '지혜'를 가르치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인생 작전대로 되지 않는다.

2019년 3월 4일 월요일

잠시재潛時齋를 열며,

미치도록 쓰고 싶은 글이 있었다. 아이디어는 분명했고, 글을 거의 반쯤 완성했지만 컴퓨터를 바꾸면서 파일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 같다. 딴에는 의미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쓸 데 없이 길고 재미없는 글이란 걸.

그래서 집착을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영상도 함께. 그리고, 글은 짧고 분명하게.



일단 오늘은 올리는 게 목적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려고 한다.

큰 기대는 없다. 그래도 시작했다.

2013년 3월 8일 금요일

나의 저질 체력.


2013년이 시작하자마자 무리를 좀 했다. 1월에는 계속 주말에도 일했고 2월에는 안 그러려고 했건만, 첫째 주 금/토/일 3일 연속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목감기 정도로 여기고 나의 호중구 기능을 테스트해본답시고 약도 안 먹고 버텼다. 일은 일대로 하고. –_-;;

역시 호중구가 멀쩡하지 않나 본지 설 연휴를  맞아 계속 골골대다가 결국 백기를 들고 이비인후과 신세를 일주일 넘게 졌다. 덕분에 이제는 다 나았고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가장 섬뜩한 건, 목에 무언가 느낌이 있을 때마다 혹시 종양? 뭐 요딴 걱정을 하는데, 그런 망상에 휘둘리는 거다. 물론 의사선생님이 아니라고 했다.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능력도 많이 부족하다. 마음은 이것저것 다 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준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받아들여야지. 오히려 좋은 점이 있다. 원래 내 성격이 이것저것 마구 벌려놓고 수습 잘 못 하는 성격인데, 이제는 체력의 핸디캡 땜시 애시당초 (예전처럼) 막 저지르지는 않는다. 몸이 움직이기 전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온 정신을 집중한다.

그렇게 잘 하면 얼마나 좋아. 에궁. ;;

2013년 2월 6일 수요일

직업적 편견.

 

유난히 좋지 않은 편견들을 가진 직업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공무원, 택시 기사, 의사 등이 그러한데, 일상 생활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때때로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직업들이다. 그들에게 붙여진 ‘딱지’는 일종의 편견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정도다. ‘갑(甲)질’의' 왕 공무원, 불친절한 택시 기사, 오만한 의사 같은 것이 대표적인 편견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위에서 언급한 스테레오 타입에 맞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만난 공무원들은 모두 한결같이 똑똑하고 예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갑질’이랑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내가 ‘을’의 입장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다. 운이 좋은 건가?

택시 기사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신이 없을 때나 기분이 울적할 때 빼고는 택시 기사와 대화를 즐기는 편이다. 그것도 택시비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땜시. –_-;; 뭐, 이런저런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거의 받아보질 못 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의사는 말할 것도 없다. 내 생명의 은인들이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경외한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만난 의사들은 모두 한결 같이 친절했으며 겸손했다. 때때로 그들이 하는 일에 비해서 돈을 조금 번다는,(ex. 레지던트) 쓰잘 데기 없는 연민의 정(?)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내가 너무 착한 건가?

왜?

물론 내가 긍정적이고 똘끼가 충만한 사람이라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경험이 ‘보편적’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문제는 ‘동감’이다. 더 나아가서 ‘연대’이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우리는 서로 같은 노동자라는 연대의식을 가질 때 세상은 더 아름다워진다. 어떤 직업적 캐릭터를 가지게 되든, 다 사연이 있기 마련이며 그 사연의 핵심은 우리는 모두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나와 같은 처지이다. ‘동감’하고 ‘연대’해야 한다.

※ 팁: KT 상담원이랑 통화 잘 하면, 아메리카노 커피 기프티콘 준다. ㅡㅡ;;

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지지이유가 분명한 한 표.

 

지난 대선 투표를 회고해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가카는 아니었고 정동영을 찍었을 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권영길의 코리아연방 공화국을 지지하지도 않으니 찍지도 않았을 게다. 그리고 문국현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그럼 얼굴 닮았다고 이회창? 이것도 아니고, 장난으로 허경영을 찍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설마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남은 건 사회당인데, 아마 여기를 찍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후보도 공약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전의 대선, 그러니까 2002년 대선은 분명히 기억난다(그래 봤자, 꼴랑 두 번^^). 민주노동당을 찍을까 사회당을  찍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정몽준 지지 철회를 보고 노무현을 찍었다. 손이 저절로 그리로 가던데, 찍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낙장불입.

많은 암기법에서 강조하는 것이 암기할 대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관성적으로 표를 던졌고 그 결과 5년이 지난 시점에 지지 후보를 까먹었다. 반면, 10년 전의 선거에서는 스토리가 분명했으므로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나의 한 표는 선택지가 너무 뻔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표를 던진 후보를 기억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지지 이유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거티브 캠페인 만큼, 네거티브 지지(?)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박근혜가 싫어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분명한 이유로 문재인을 지지한다:

1. 검찰 개혁을 ‘그나마’ 기대해 볼 만한 후보다. 다른 사람에겐 답이 없다. 특히 얼마 전 논란이 됐던 검사의 문자 메시지에서 알 수 있듯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면 검찰 개혁은 물 건너 간다. 다시 과거의 되풀이가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는 검찰 개혁에 대해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실패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밝히고 있다(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모든 일이 대통령 1인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검찰 개혁이 될 것이라 순진하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2.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해결할 후보이다. 4대강 사업을 단순히 가카 개인의 잘못으로 치환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건 토건 욕망의 발현이고, 역대 정권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카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새만금 사업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이를 되돌리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권의 연속성과 인적 구성의 문제가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도 4대강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제 토론회에서도 그 점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사실 누가 되든 대한민국이 크게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에서만큼은 박근혜 후보보다 분명한 강점이 있으므로 나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