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7일 금요일

인생 작전대로 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대학의 명강의를 대중에게 전하는 일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동영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인문학을 '소비'하는 트렌드도 한 몫을 했다고 본다. 뭐 이유나 목적이 어찌 됐든 좋은 강의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난 예전부터 '명강의'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 어떤 절대자로부터 대단한 진리를 일방적으로 제공받고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원래 "삐딱이").

대안으로는 修業이란 단어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쓰는 한자인 授業이 아닌, 修業이라 쓰면 뭔가 일방향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 수양을 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일방향 대형 강의가 대부분이라는 현실에 뜨악하고(1학년 수업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비싼 등록금 내고 그런 강의를 듣고 싶지 않아서 2학년때부터는 일부러 20명 내외의 소규모 修業만을 찾아 다녔다. 이 글에서는 기억을 더듬어 학부시절 修業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선정 기준은 딱히 없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정한 거다. 그만큼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다.

1. 철학 전공 - 언어철학 (구자윤 선생님)

철학과 수업은 대부분 소규모 수업이지만, 그렇다고 항상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의 스타일에 따라, 또 해당 클래스를 구성하는 학생의 성향에 따라 수업의 분위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구자윤 선생님은 편안하게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도 정확한 개념을 전달하는 데도 뛰어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학기의 커리큘럼은 결국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언어철학이란 일상의 언어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철학에서의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에 확장해서 해석하는 일을 경계해야 하지만,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이론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렸다. 각자 인생의 궤적(가정 환경, 교육, 자기 성찰 등)이 서로 다르기에 각자가 구사하는 언어의 '맥락'은 어차피 서로 다르다. 따라서 타인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나의 언어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기대는 애초에 접어야 한다. 다만, 인간은 그 '맥락'에 주목함으로써 그에 가깝게 다가갈 수만 있을 뿐이다. 이 같은 '개똥철학'을 주입하면 타인의 말에 상처 받거나 나 혼자 열낼 일이 많이 없어진다. 그런 면에서 아주 실용적인 교훈을 준 셈이다.

2. 사학 전공 - 서양사 특강 (백인호 선생님)

내 기억엔 서양사 특강 뒤에 무슨 번호가 붙었던 것 같다. 번호를 붙이는 데 무슨 규칙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해당 수업은 한 학기 동안 프랑스 혁명을 다루었다. 흔히 프랑스 혁명을 공부한다고 하면, '테니스 코트의 선서'니 '삼부회'니 뭐 이런 것들을 줄줄이 외우고, 'ㄴ-ㄹ-ㄱ-ㄷ' 혹은 'ㄷ-ㄹ-ㄴ-ㄱ'인지를 고르는 것으로 '혁명-반혁명'의 과정을 깡그리 뭉개버리는 입시교육의 폐해를 떠올리기 쉽다. 백 선생님은 프랑스 혁명 전공자로서 방대한 지식을 갖고 계시지만 결코 일방적으로 전달하지는 않으셨다. 학생들이 대한민국 입시교육을 통과한 정도의 수준은 된다고 가정하고, 매번 영문 아티클을 읽고 학생들이 그 안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 학기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망딸리떼'였다. 영어로 치면, mentality 정도에 해당한다. 입시교육에서는 부르주아지나 왕족 혹은 귀족 출신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면, 이 수업에서는 당시 프랑스 민중(이 단어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이 공유하고 있던 '혁명의 기운'을 강조했다. 중간고사를 건너뛰고 유일한 평가였던 기말 과제는 프랑스 혁명의 어떤 시기를 선택하여 기층 민중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 소설을 하나 쓰는 것이었다. 난 그닥 열심히 쓰지는 않았고 기한을 넘겨 억지로 제출했다(당연히 성적도 별로). 그럼에도 당시 내게 한 학기 수업 자체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프랑스 혁명뿐만 아니라, 현대사를 해석하는 관점을 기르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3. 정치학 전공 - 현대정치사상 (이동수 선생님)

우리 학교 정치사상 수업 이름은 항상 맨 뒤에 '史'자가 붙는데, 이 수업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아닌가? ㅎ 현대정치사상사, 라고 하니 좀 어색한 것 같아서 ^^;). 이 수업은 한 학기 내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다루었다. 이 수업을 듣기 전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내게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에 "신좌파의 상상력"이라는 책이 대단히 유행했는데, 아마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 컸다고 생각한다. 68혁명 때의 흑백사진을 오렌지색 톤으로 감싼 표지는 당시로서는 그 자체로 매우 '혁명적'이었다. 제목과 표지 때문에 잘 팔린 책이지 내용 때문에 유행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야지, 나만 이해하지 못한 걸로 생각하면 너무 억울함 ㅠ.ㅜ). 책의 두께에 주눅이 들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제대로 모르니 내용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다만 회색과 오렌지색이 조합된 표지가 패션 아이템으로 적절했을 뿐이었다.

이 수업의 첫날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명강의"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이미지가 20년이 다 된 시점에도 아직 선명하다. 이 선생님은 칠판 가운데에 가로선을 하나 죽 그어놓고 맨 왼쪽에 선 위로는 '자연', 그 아래로는 '인간'이라고 쓴 다음, 맨 아래 가로축에는 각각 순서대로 '선사', '고대', '중세', '근대', '탈근대', 라고 적은 다음 한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썰을 확 푸셨다. 그리고 난 그 '강의' 하나로 그 간의 컴플렉스를 해결해버렸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렇게 쉽게 설명하고, 결국 깡통 같은 내가 이해해버리다니! 일방적 '강의'는 첫날만 있었다. 그 다음에는 되도록 책을 읽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리오타르 같은 것도 어색한 번역으로 나온 책이었지만 더듬더듬 이해하면서 참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첫날의 그 "명강의"가 없었다면 그 기쁨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4. 중핵 필수 - 철학적 인간학 (스팔라틴 신부님)

졸업을 하려면 필수로 '그리스도 인간학' 또는 '철학적 인간학'을 들어야 했는데, 중핵 필수가 다 그렇듯이 내가 딱 싫어하는 대형강의 스타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1학년때 수강하지 않고 나중에 영어수업으로 개설될 때(그래서 10명 이하였던 걸로 기억, 폐강 위기였으나 어찌어찌 살아남) 듣게 되었다. 주교재로 여러 철학자를 다루는 영어 텍스트를 읽어야 했고 수업과 발표는 영어로 진행되었으나, 과제는 한글 책을 읽고 한글로 내도 무방했다(그래서 신청했다). 그 때 과제로 읽었던 책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같은 책이다. 이런 책을 억지로라도 감수성이 조금 살아 있을 때 읽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두 책이 한국에서 유명한 책이 아니었는데, 신부님 덕분에 '죽음'에 대해 미리 공부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이후 암을 겪어내면서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는 기회를 주었다(그렇다고 다시 읽지는 않았다).

5. 경제학 전공 - 미시경제학 (송의영 선생님)

마지막으로 쓸 수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강의'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경제학 전공자는 (나같은 PEP 연계전공 나부랭이까지 포함하여)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고, 인기 있는 교수님의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과의 모든 분반이 동일하게 Varian의 Intermediate Microeconomics를 보고, 토론의 여지가 없이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과 습득만을 목표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송의영 선생님의 수업을 "명강의"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지 않고, "修業"으로 분류하고 싶다. 수강생이 100명 가까이 되었지만 말이다.

미시경제학 수업에서는 때때로 칠판 절반 정도를 쓸 정도로 공식 유도를 하여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기억엔(선택적 기억일 수밖에 없지만), 송 선생님이 한 번에 깔끔하게 공식 유도를 끝까지 하신 적이 드물다. 유도하는 공식 중간의 어느 한 줄에서 작은 실수를 하여 결국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봤자 어려운 공식 유도도 아니고 기껏해야 편미분 정도하는 건데 실수가 나올 건덕지는 별로 없었다.

(여담: 미시경제학에서 편미분 한 번 써먹으려고 경제학 전공자는 필수로 교양 과목인 "대학수학"을 들어야 했다. 내가 졸업할 즈음에는 고등학교 문과 교육과정에서 미적분이 빠진다고 미적분을 모르는 학생들이 경제학과에 입학하면 세상 무너질 것처럼 김경환 교수님께서 한숨을 쉬셨다. 하지만 그 뒤로 10여년 동안 미적분도 모르는 신입생이 들어왔지만 별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같이 문송한 학생들에게 미분은 그저 x의 최고차항부터 줄 세우고 x의 지수에 해당하는 숫자를 x 앞에 계수로 빼고 차수를 하나씩 낮추는 단순작업일 뿐이지, 원리고 나발이고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편미분도 x나 y 중에서 한 놈만 패는 것이다.)

그렇게 실수를 할 때마다 교수님은 칠판에서 한 발 물러서면서 물끄러미 칠판에 적힌 수식들을 바라 보셨다. 그리고 이내 실수를 발견하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 마디 하셨다:

"인생 작전대로 되지 않아요."

이후로 이 말은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대 학사에 하버드 박사이니 그보다 더 엘리트일 수는 없는 교수님께서 학부 수준의 공식 유도를 틀릴 리가 없다. 그렇다고 강의 준비를 게을리하는 교수님도 아니시다. 모든 것이 다 의도된 '작전'이며 '연기'가 아니었을까? 학생들에게 스티글리츠의 탈세모형 따위를 전달하는 것보다 딱딱한 경제학 강의에서도 인생의 '지혜'를 가르치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인생 작전대로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