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지지이유가 분명한 한 표.

 

지난 대선 투표를 회고해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가카는 아니었고 정동영을 찍었을 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권영길의 코리아연방 공화국을 지지하지도 않으니 찍지도 않았을 게다. 그리고 문국현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그럼 얼굴 닮았다고 이회창? 이것도 아니고, 장난으로 허경영을 찍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설마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남은 건 사회당인데, 아마 여기를 찍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후보도 공약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전의 대선, 그러니까 2002년 대선은 분명히 기억난다(그래 봤자, 꼴랑 두 번^^). 민주노동당을 찍을까 사회당을  찍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정몽준 지지 철회를 보고 노무현을 찍었다. 손이 저절로 그리로 가던데, 찍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낙장불입.

많은 암기법에서 강조하는 것이 암기할 대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관성적으로 표를 던졌고 그 결과 5년이 지난 시점에 지지 후보를 까먹었다. 반면, 10년 전의 선거에서는 스토리가 분명했으므로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나의 한 표는 선택지가 너무 뻔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표를 던진 후보를 기억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지지 이유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거티브 캠페인 만큼, 네거티브 지지(?)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박근혜가 싫어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분명한 이유로 문재인을 지지한다:

1. 검찰 개혁을 ‘그나마’ 기대해 볼 만한 후보다. 다른 사람에겐 답이 없다. 특히 얼마 전 논란이 됐던 검사의 문자 메시지에서 알 수 있듯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면 검찰 개혁은 물 건너 간다. 다시 과거의 되풀이가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는 검찰 개혁에 대해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실패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밝히고 있다(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모든 일이 대통령 1인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검찰 개혁이 될 것이라 순진하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2.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해결할 후보이다. 4대강 사업을 단순히 가카 개인의 잘못으로 치환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건 토건 욕망의 발현이고, 역대 정권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카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새만금 사업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이를 되돌리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권의 연속성과 인적 구성의 문제가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도 4대강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제 토론회에서도 그 점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사실 누가 되든 대한민국이 크게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에서만큼은 박근혜 후보보다 분명한 강점이 있으므로 나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

댓글 3개:

  1. '사실 누가 되든 대한민국이 크게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

    대단하다.
    '나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많지 않을텐데,,,

    정확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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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도 암기할 대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투표한 첫 선거일텐데,,,,
      이번 건은 10년이 지나서도 기억이 날 것 같아.

      '그땐 여자(1, 7번)을 찍지 않았음!!!'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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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5번도 있었는데. 쩝. ;
      그래도 적당히 차이가 나서 5, 7번이 욕 많이 안 먹어서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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